-
디디의 우산 - 황정은문화생활/책 2019. 9. 18. 23:17
서점에서 책갈피 색이 예뻐서 골라온 책갈피
책갈피의 내용이 자꾸 눈에 밟혀서 빌려온 책
디디의 우산
두 가지 소설로 이루어진 연작소설.
두 소설에서 남기고 싶은 문구 정리하기.
d
dd를 만난 이후로는 dd가 d의 신성한 것이 되었다. dd는 d에게 계속되어야 하는 말, 처음 만난 상태 그대로, 온전해야 하는 몸이었다. d는 dd를 만나 자신의 노동이 신성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을 가진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으며,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는 마음으로도 인간은 서글퍼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d를 이따금 성가시게 했던 세계의 잡음들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행복해지자고 d는 생각했다. 더 행복해지자. 그들이 공유하는 생활의 부족함, 남루함, 고단함, 그럼에도 주고받을 수 있는 미소, 공감할 수 있는 유머와 슬픔, 서로의 뼈마디를 감각할 수 있는 손깍지, 쓰다듬을 수 있는 따뜻한 뒤통수…… 어깨를 주무르고, 작고 평범한 색을 띠고 있는 귀를 손으로 감싸고, 따뜻한 목에 입술을 대고, 추운 날엔 외투를 입는 것을 서로 거들며, dd의 행복과 더불어, 행복해지자.
그것을 골똘하게 내려다보며 d는 바깥인데 조금도 바깥으로 여겨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방에 틀어박혔다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왔으나 여기는 여전히, 어딘가의 안쪽이고, 작은 주머니에서 조금 덜 작은 주머니로 이동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가 놀랍도록 친밀하고도 구태의연했다. 그리고……그렇다 당신의 말씀 그대로, 이 방은 본래 이러했다.
d는 그동안 자신이 무언가를 잃었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세계가 변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야. 본래 상태로 돌아왔을 뿐이라고 이제 생각했다. dd가 예외였다. dd가 세계에, d의 세계에 존재했던 시기가 d의 인생에서 예외. 따라서 나는 변한 것이 아니고 본래로 돌아왔다……d는 벌어져 있던 입을 다물었다. 차가우면서 뜨거운 금속 창처럼 양쪽 귀를 꿰뚫는 것이 있었다. d는 그간의 흔적들이 멀고도 긴 궤적을 그린 끝에 자신에게 돌아왔음을 느꼈다. 세계는 잡음으로 가득했다.
여소녀가 다시 다이얼을 돌렸고 그들은 엘라 피츠제럴드가 부르는 블루문을 들었다. d는 눈을 뗄 수가 없어 진공관을 바라보았다. 너무 쉽게 깨지거나 터질 수 있는 사물. 그 진공을 통과한 소리들에도 잡음이 섞여 있었다. d는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얇은 유리 껍질 속 진공을 들여다보며 수일 전 박조배와 머물렀던 공간을 생각했다. 그 진공을. 그것은 넓고 어둡고 고요하게 정지해 있었으나 이 작고 사소한 진공은 흐르는 빛과 신호로 채워져 있었다. d는 다시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느꼈던 진공을 생각하고, 문득 흐름이 사라진 그 공간과 그 너머, 거기 머물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과 d에게는 같은 것이 거의 없었다. 다른 장소, 다른 삶, 다른 죽음을 겪은 사람들. 그들은 애인을 잃었고 나도 애인을 잃었다. 그들이 싸우고 있다는 것을 d는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무엇에 저항하고 있나. 하찮음에 하찮음에.
나의 사랑하는 사람은 왜 함께 오지 않았나.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상식적으로'에서 상식은 뭘까? 그것을 생각일까? 사람들이 자기 상식을 말할 때 많은 경우 그것을 자기 생각이라고 믿으니 그것은 생각일까. 아니야 common sense니까 세계에 대한 감이잖아. 그것이 그러할 것이라는 감.
...
우리가 상식을 말할 때 어떤 생각을 말하는 상태라기보다는 바로 그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역시 생각은 아닌듯 하다…… 우리가 상식적으로다가,라고 말하는 순간에 실은 얼마나 자주 생각을…… 사리분별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인지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흔하게 말하는 상식, 그것은 사유라기보다는 굳은 믿음에 가깝고 몸에 밴 습관에 가깝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건 상식이지,라고 말할 때 우리가 배제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너와 나의 상식이 다를 수 있으며 내가 주장하는 상식으로 네가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는 가정조차 하질 않잖아. 그럴 때의 상식이란 감도 생각도 아니고…… 그저 이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는 것이고 저 이야기는 저렇게 끝나는 것이라는 관습적 판단일 뿐 아닐까.
그것을 알 필요가 없다.
나는 그 태도를 묵자의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서수경과 나는 그런 질문을 가진 뒤에야 비맹인이 사용하는 글자를 일컫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맹인이 사용하는 글자를 점자라고 칭하는 것처럼 비맹인이 사용하는 글자를 일컫는 말이 있으며 그 말이 묵자라는 것을 그때에서야.
...
서수경과 나는 사십여년을 사는 내내 그 말을 몰랐던 이유가 궁금했다. 우리를 둘러싼 기록문자들, 우리가 보는 언어들이 전부 묵자인데 그것을 묵자라고 칭한다는 것을 우리는 왜 몰랐을까. 한번도 그 말을 들어본 적 없고 본 적 없으며 말해본 적이 없는 이유에 대해 우리가 함께 생각한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그것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묵자의 상태가 상식이라서 그걸 부를 필요도 없어, 그것이 너무 당연해 우리는 그것을 지칭조차 하지 않는다.
728x90'문화생활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에 읽은 책 (0) 2021.03.20 시공사 시공북클럽 멤버십 회원 - 책을 좋아한다면 괜찮은 선택! (0) 2019.11.23 회사가 싫어서 - 너구리 (0) 2019.09.14 불안 - 알랭 드 보통 (0) 2019.06.15 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0) 2019.03.16